버선발로 밥주걱을 내던지고 뛰쳐나가
그리운 님의 걸음을 앞장서 비질하고
먼지쌓인 보따리에 담긴 슬픈 기억을 꺼내어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는 울거니 웃거니
철없이 궁상을 떨던 차에 
아픈 생채기를 보았소.
밤바람이 영원한 날인줄 알았나 보오.


해질녘 노을이 차가워진 날
모래사장에 나란한 발자국을 손짓하며 
이것 좀 봐주오
여기 우리 영원이 있소
순진한 편지가 외로워진 밤에는
마지막 영원이라는 것을 그날에 알았소.


이제 홀로 쏟아진 보따리를 주섬거려 묶고
더이상 먼지가 쌓이지 않는 우리의 역사
집 밖을 나서 처참한 절벽 아래 멍하니 던지고는


졸다가 다 잊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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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980년대 취업자 스펙과 2010년대 취업자 스펙을 비교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단순 객관적 지표처럼 보이는 이 기사는 사실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의 취업난에 대한 볼멘소리를 '질타'하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써 제시된 것처럼 보인다. 실례로 2018년 대선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청년들에게 던졌던 메세지는 "너희 잘못이 아니야"였는데, 진보 정당 대선 후보의 이미지를 각인 시킨다는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대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노력에 대한 적절한 언어는 '질타'의 언어가 아닌 '이해'와 '공감'의 언어여야 할 것이다. 결국 기사는 기성 세대에게 '부재하는 자기 반성'이 연령주의적 차별을 생산하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나라 안팍으로 차별을 둘러싼 논쟁들이 오가고 있다. 여성 차별, 동성애 차별, 경제 소수자(비정규직, 때론 노동자 그 자체) 차별 등에 대한 사회 다층의 설전들...은 현재 차별을 둘러싼 여러 입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내가 공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겪는 '연령주의적 차별'은 그 성격이 다른 여타 사회적 차별과 성격이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연령주의에 근거한 대한민국 사회 조직의 특성상 사회초년생은 어디서나 심각하게 겪고 있는 문제면서도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있는 주제 중 하나다. 창의성과 독창성은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되어 얼마나 필요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숟가락 젓가락부터 준비해서 조직 막내의 마지막 건배사로 끝나는 피할 수 없는 회식,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조직 문화를 변화시킬 힘은 없어 '꼰대', '아재'라는 단어로 규정하여 젊은 세대의 커뮤니티장에서 기성 세대를 조리돌림하고 있는 현실 등이 그나마 젊은 세대가 연령주의를 '소화'해내고 있는 무기력한 방식이다. 이렇게 젊은 세대는 주체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고 연령주의를 답습한다.
주디 버틀러는 페미니즘의 주체가 '정체성의 정치'속에서 즉각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운동들 속에서 주체는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남성 페미니스트 문제, 동성애 문제, 트랜스의 문제 등에서 페미 진영이 주체 자가검열 과정에서 속앓이를 하는 것은, 차별을 인식하게 한 정치적 사건이 각 존재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속선 상에서 나는 연령주의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의 '연대'를 주장한다. 연령주의적 차별이 현 세대에서 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첫째로 연령주의의 차별 주체들이 정당화하는 방식이 여전히 기성 세대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별 당하는 주체들의 '대응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이고, 둘째는 현 시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 주체들의 연령대가 낮아짐에 따라, 기성 세대와의 갈등을 표출하는 공론장에서 연령주의적 차별은 투쟁과 대립의 형태로 사회 현상화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령주의는 은밀하고 치밀해서 대부분 연령주의의 표출 방식인 언어 폭력이 연대를 이끌만한 정치적 사건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성차별 논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차별에 대한 '커밍아웃'이 지금보다 다 힘겨웠던 것처럼, 혹여 나보다 연령주의에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 사회구조의 힘이 내가 경험한 것보다 강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두가지 생각 모두 해법은 '연대의지'다. 나는 수동적으로 정치적 사건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나는 사회초년생으로서 겪은 이 차별에 대항한 연대를 통해 위로받고 싶고, 위로하면서 얻어지는 진솔한 관계망을 염원한다. 이것이 공통적으로 권력적 구조 내 피권력자들이 느끼는 "공격성"이 아닌 '연대의지'다. 비록 이것이 권력자의 시각에서 '폭력적'으로 보여질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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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내 존재의 심각한 위기가 왔다. 그 위기는 부정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도피했던 나의 ‘한동인’이라는 정체성이다. 행동하는 것에 대한 ‘확신 불가능성’과 확신 불가능한 나의 ‘현실적 한계’를 핑계로 방관했던 한동대학교의 부조리함과 편협, 배타성에 대하여 ‘침묵’한 것이 최근 한 목사의 면직 통보로 점철되었다. 침묵의 댓가는 엄청났다. 뒤늦게 발견한 내 안의 죄책감과 기독교 혐오라는 ‘구체성 없는 규정화’로 벌어진 이 일을 부끄러움으로 마주한다.

지난 연령주의적 차별에 대한 연대라는 글에서 내가 주장한 연대의지는 허구였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결국 위로받고, 위로하고자 하는 선에서 머무는, 자기 반성의 ‘결여의 산물’이다. 세계에서 나의 행동이 위로받고자 하는 피해자의 입장 뿐이라는 이 왜곡된 자기 반성은 결국 내가 잠정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고작 긴 글로 현혹시켜 얻으려던 것이 ‘뭉클함’이었다는 것은 나의 치부다.

나는 재학 시절 침묵으로 ‘폭력가능성’을 잠정 중단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반면 돌이켜 생각해 볼 때, 한동대학교라는 매우 구체적인 장소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구조적인 폭력’은 더욱 굳어져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번 동성애 강연 문제로 벌어진 사건마저 우스꽝스럽다 여기며, 제 3자의 입장에서 웃고 떠들었던 것을 반성하고, 이제야 책임을 느끼며 말을 아끼려는 가해자의 추악함을 어떻게 떨쳐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부끄러움으로 뭐든 하겠다는 의지가 유일한 내 속죄의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나와 상관없는 사건에 나의 경험이 반응하여 참여하기까지 다른 차원의 감수성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을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것, 이 때 발생하는 나와 타자 사이의 불가능성에도 물러서지 않고 내 존재를 다른 존재에 비비려는 노력, 이 두가지는 그동안 침묵하여 사건에 당사자성이 결여된 주변인들의 책임감이다. 나는 이 사건의 침묵으로 일관한 가해자이며, 동시에 우연히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게 된 운좋은 주변인이다. 나는 위로받고, 위로하려는 차원을 넘어 내 감수성과 집중력을 다해 한동대학교 부당 재임용 거부 사건에 참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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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진 돌 하나에 강물이 일렁인다.
천천히 가라앉는 것으로 숨을 참아
차디찬 강물을 흘러가게 하는 것은
괴로움으로 사랑을 전하려 함이니.

 

사랑을 대신하여 서글픈 바람이 닿는다.
낱낱이 드러나 발가벗겨진 이 곳에
사랑만이 숨겨져
어디에도 남지 못하고 잘게 흩날리니,
당찬 문장들을 지우고,
가려져 사라질 것들을
뒤로 써내려 간다.

 

글자들을 모아 부끄러움을 담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삼킨다.
무력한 듯 담담히 놓여있으나,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고요한 밤 무성한 풀숲에
귀뚜라미들은 너도나도 사랑을 부르짖는데,
찌르르-
내 울음소리 당신에게만 들리기를.

 

무음-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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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솟은 파도 소리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벌벌 떨었습니다.
검퍼런 바다가 발에 닿았다가, 종아리에 올랐다가, 가슴까지 차올라 이내 나를 덮고,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희미한 메아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
혹여 들릴까 고개를 쳐박고 숨어도
다시 고갤 들어 저 먼 푸른 숲에 마주치는 새소리를 이따금씩 듣는 것은
떠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모래사장을 당신과 나의 시간만큼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가만한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리에 
한 발 향했다가, 
다시 되돌려 반대로 슬픔을 새기고,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가, 
찢겨진 외마디에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가, 
그렇게 그림자는 늘어져 사라지고 없습니다.

보이지 않아 찰진 파도는 더 크게 들리고,
사라진 발자국은 더 큰 어둠으로 나를 덮는데,
언제쯤 다정히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줄까요.

당신의 믿음이 그만큼 먼 것처럼 아득히,
그렇게 아득히 보고 싶습니다.



정진형 -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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