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론 

아카넷 코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지음 이근세 옮김 

2015.9.22. 화

정진형


1. 머리말


예배는 대중의 몫이 아니다. 대중들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뿐이다. 

내면이 논의를 요구하지만, 그 논의는 소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배의 형식은 두 종류로써 하나는 실천 의식이며, 둘째는 신앙 문서이다. 

의식은 덕행과 비슷하고, 문서는 진리의 그림자와 같으며 순수한 빛에 어느 정도 근접해 있다.

그러나 예배가 격식 때문에 옹색해지고 신적인 빛이 사람들의 의견 때문에 애매해지는 경우는 너무도 자주 발생한다.

반면 이교도의 경우: 종교 의식은 있으나 신앙 문서가 없었다. 


라이프니츠의 저작 의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어떻게 자연 종교가 율법이 되고 공적인 교리의 권위를 갖게 되었는지를 제시


라이프니츠의 종교관

-자연 종교

자연 종교란 신의 현존영혼의 불멸성을 다루는 종교(연역적, 논리적)를 말한다.

-계시 종교

계시 종교란 신이 실제로 인간을 구원하고자 결정했으며, 이를 위해 육화부활처럼 이성이 연역해낼 수 없는 수단들을 사용한다고 명시한다.(역사적 사실의 질서)

예수는 자연 종교를 계시 종교로써 완성시켜, 현자들의 종교가 대중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사랑에 대하여

예수그리스도는 모세가 시작한 것을 완성함으로써 신성이 단지 경외심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자애의 대상이기를 원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사랑할만한 것들을 기쁨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랑이며, 신의 완전성을 우리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의 결과

덕을 실천하게 하여, 인간적인 것을 신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의무를 이행하고 이성을 따름으로써 최상의 이성의 명령을 수행하고, 우리의 모든 지향으로 하여금 신의 영광과 다름없는 공동선을 향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성공하든 못하든 간에 신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신이 바라는 것은 최선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일어나는 일에 만족하게 된다.

나쁜 결과에 불쾌해지지 않으며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만 후회하게 되고, 배은망덕 때문에 덕의 실천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의 완전성을 인식하는데 있으며, 빛이 없는 실천은 그저 습관에 머무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예배는 의식으로 환원되었고 교리는 문서로 채워졌다. 


이 상황에서 라이프니츠가 밝혀야 했던 것

  1. 악의 산출과 기원에서 자유필연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
  2. 연속과 그 요소인 분할 불가능한 것들에 관련된 논의로서 무한에 대한 고찰


게으른 이성

미래는 필연적이므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 

신성의 모든 것의 예견과 모든 것의 예정 때문. 원인들의 연쇄일 뿐이다. 

-필연성에 대해 잘못 이해된 이러한 관념은 실천의 영역에서 사용되었고 터키식 숙명을 생겨나게 했다.


3가지 숙명론

-터키식 숙명: 위험을 피하지 않으며, 흑사병에 감염된 지역을 떠나지도 않는다.(게으른 이성)

-스토아적 숙명: 내일을 근심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버리라고 말한다.내일 일은 모른다는 필연성으로부터, 근심의 무용론을 내세운다.

-기독교적 숙명: 신을 신뢰해야 한다는 확신으로부터 만족하는 방법을 배운다. 선한 주인과 관계하고 있다는 신뢰로부터 스스로의 행동이 가장 좋은 행동임을 확신할 수 있다.(신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해보고, 그대로 실천하는 수 밖에 없다는 필연성)


터키식 숙명 반론: 대중들은 자신의 신념에 터키식 숙명을 혼합하여 가지고 있는데, 그러나 자명한 위험 앞에서 그들은 피해서 갈 수 밖에 없다. 눈 앞에 있는 위험에는 행동하면서, 멀리 있는 위험에는 게으른 이성을 사용한다.

*섭리라는 것은 우리가 의무를 다했을 때 진정으로 작용한다.


운명의 필연성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악덕과 방탕함을 변명하려고 할 경우, 이는 특히 그 필연성을 남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으며,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충동대로 행하하는 것이라고 한다.

반론: 우리가 무엇을 하던 간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틀리다. 결과는 필연적인 원인을 동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은 설명이 아니라, 파괴이다.


정의와 불의, 칭찬과 비난, 벌과 보상은 필연적인 행동과 관계해서는 있을 수가 없으며, 불가능한 것과 필연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필연성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악을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인 생각은 타당하지 않으며, 원리의 단일성은 선험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논란의 여지 없이 확립되었다고 인정했다.(p.24, 벨)


그러나 이 점이 해결되더라도 신이 전능함을 통해 악행을 묵인, 예견, 허용한다는 점에 난점이 있다.

그러면서 신학자들은 세세한 부분과 미래의 사건에 대한 신의 인식을 부정하고자 했다. 

신의 의지와 능력없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선한 존재에 합당하지 않는 의도와 행동을 신에 귀속시킨다. 

반론: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악을 행하는 정의를 어떤 개념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정의를 정의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또 다른 난점

인간의 구원에 대한 신의 예정

사람들의 차별은 정의에 어긋난다. 차별적 예정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라는 믿음의 부재 또는 선의 부재는 신의 은총이라는 신의 소관에 있다. 

어거스틴: 아담의 타락으로 인류 전체가 영겁의 벌을 받는다(논쟁거리), 적은 수의 사람만을 구하는 이유(논쟁거리), 이러한 선호는 어디로부터 나는지(논쟁거리), 타락에 대한 신의 허용(논쟁거리), 


라이프니츠: 자유는 강제 뿐 아니라 진정한 필연성에서도 면제된다. 신은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지만, 절대적 필연성에 의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신이 부과한 자연법칙들은 기하학적 진리와 자의적인 결정의 중간에 있다는 점. 자유는 무차별성이 있으나 평형의 무차별성은 없다는 점,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자발성이 있다는 점, 가정적 필연성(조건적 필연성; ~한다면 일어나는 필연성)과 도덕적 필연성 에는 불합리한 것이 없다는 점을 앞으로 밝혀낼 것이다.


  1. 악의 기원에서 신의 완전성을 변호한다. 악의 본성은 결핍이다. 신은 악을 원하지는 않으나 허용한다. 자신의 최상의 성스러움과 선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죄와 불행을 허용하고, 협력하고 기여한다는 사실이 제시된다.
  2. 은총과 예정의 주제에 관해서 우리는 신의 선재적 은총에 의해서만 회개할 수 있으며, 신을 통해서만 선을 행할 수 있다. 신은 모든 사람들이 은총을 제대로 사용하기를 원하는 한에서 충족 은총, 인간의 자유에 좌우되는 은총을 내린다. 신의 예정은 믿음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새로운 체계(예정 조화 체계)

육체의 종자에 이미 전적으로 유기체적인 전성이 있고, 이 종자가 이미 생겨난 육체의 종자에 포함되는 식으로 최초의 종자들에게까지 이른다면, 기계론은 다른 조식 형성체 없이도 동물들의 유기체적 육체를 산출하는 데 진정으로 충분하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했다. 

-모든 질서와 미래의 모든 작동을 예정해놓은 조물주로부터만 가능하다.

육체가 이성적 영혼의 계획을 육체 고유의 법칙에 따라 실행할 수 있도록 신이 육체를 만들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신은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가장 완전한 세계를 선택하면서 이 세계에 부수적으로 첨가된 악을 지혜롭게 허용했으며,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고려해보면 이 악 때문에 이 세계가 선택 가능한 최선의 세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미 주장했다. 


라이프니츠는 능동적 힘의 본성과 운동법칙에 관한 새로운 발견을 하고서 이것이 기하학적 필연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순전히 불규칙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 ,즉 합목적성 혹은 최선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제일 실체의 특징(이것의 산출을 통해 최상의 지혜가 드러나고 가장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

과거와 미래의 연결 및 현존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의 연결의 완전한 조화

  1. 시간을 연결하는 것: 모든 물제들의 전성에서 일어난다.
  2. 장소를 연결하는 것: 모든 곳에 유기체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실제와 물질적 현상 간의 교류

이것으로 인식의 총체를 수립하고자 했다.


영혼과 육체의 문제

주체 개념

영혼과 육체의 주체를 구성하는 결합이라는 말의 의미는 행위가 귀속되는 어떤 주체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의미에서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영혼의 행위나 육체적 행위는 주체에게 귀속된 채 일어나는 행위이다. (각주 60번)

영혼은 육체에 작용을 가하고 육체는 영혼에 작용을 가하면서 결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영혼과 육체의 속성

영혼: 완성태 혹은 능동적 원리

육체: 수동성

-회개는 전적으로 인간이 저항을 줄이는 것의 결과일 뿐 협력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회개는 순전히 신의 은총의 작품으로서 회개에 있어서 인간은 단지 저항하면서 협력할 뿐이기 때문이다.


기타 다른 학자들의 견해들이 자신의 견해들에 적절한 반론을 제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자신의 표현에서 가끔씩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를 억지로 걷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제를 둘러싼 논의를 확장하기 위하여 본래 쓰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 것을 지적하며 머리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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