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솟은 파도 소리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벌벌 떨었습니다.
검퍼런 바다가 발에 닿았다가, 종아리에 올랐다가, 가슴까지 차올라 이내 나를 덮고,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희미한 메아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
혹여 들릴까 고개를 쳐박고 숨어도
다시 고갤 들어 저 먼 푸른 숲에 마주치는 새소리를 이따금씩 듣는 것은
떠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모래사장을 당신과 나의 시간만큼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가만한 바람을 타고 들리는 소리에 
한 발 향했다가, 
다시 되돌려 반대로 슬픔을 새기고,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가, 
찢겨진 외마디에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가, 
그렇게 그림자는 늘어져 사라지고 없습니다.

보이지 않아 찰진 파도는 더 크게 들리고,
사라진 발자국은 더 큰 어둠으로 나를 덮는데,
언제쯤 다정히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줄까요.

당신의 믿음이 그만큼 먼 것처럼 아득히,
그렇게 아득히 보고 싶습니다.



정진형 -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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