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하여 - 유하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리뭉실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믈흐믈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 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달라고
살아 있어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러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언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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