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권력이고, 
그 때문에 누군가를 멍청이로 보는 시선은 권력자의 시선이다.
그러나 ‘멍청이’라는 배제된 정체성은 근원의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
전혀 타자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내 안에 그 피지배자의 멍청함이 깃들여 있다. 
순간 객체화 시킨 나에게서 멍청함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멍청함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진다.
나와 다를 뿐만 아니라 미치지 못했기에 ’멍청이’였던 상대는 더이상 타자로 남는게 아니라 동지로 곁에 선다.
이것은 관계 속의 나를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의 결과가 아니다.
동질감 앞에 너와 나를 세우고, 비로소 우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나는 없다.
아니, 나는 있는데 그 관계의 마주함에서 ‘나’와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개성은 이전의 나와 너 사이의 타자라는 인식으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 우리는 그 다름에서 오는 개성을 
오목 거울에 비친 나로 보고, 볼록 거울에 비친 나를 보듯이
또다른 나의 가능성으로 현재화한다.

'나' 서너명이 술잔을 비울 때면 즐겁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의 조각이나마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을 때,
가능성이 정말 생생히도 살아있구나 느낀다.


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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